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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Seidler, ‘킹스 스피치’의 전설적인 각본가를 떠나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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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Seidler, ‘킹스 스피치’의 전설적인 각본가를 떠나보내며
David Seidler, ‘킹스 스피치’의 전설적인 각본가를 떠나보내며

영화 세계에 새긴 그의 이름, 데이비드 시들러

데이비드 시들러, 아카데미 수상 각본가로서 영화 킹스 스피치의 주역이자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준 그의 삶은 많은 이야기를 남긴 채 86세를 일기로 막을 내렸습니다. 그는 영화 산업에서 40년 넘게 일하며 무대 뒤에서 자신만의 발자국을 만들어 왔습니다. 특히, 73세라는 나이에 아카데미 최우수 각본상을 수상하며 업계에서 '늦깎이 성공'의 대표 주자로 자리 잡은 그의 이야기는 단순히 영화팬들뿐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아버지가 항상 말씀하셨어요. 나는 ‘늦게 피는 꽃’이라고요.” 그는 아카데미 수상 소감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한마디는 그의 독특한 인생사를 완벽히 요약했습니다.

시들러와 킹스 스피치: 그 자체가 인생의 투쟁

킹스 스피치는 단순히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이 작품은 시들러 자신의 이야기, 더 정확히는 그가 어린 시절 자라온 경험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어린 나이에 그는 심각한 말더듬을 겪으며 힘겨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가 이 힘든 과정을 견뎌낼 수 있었던 데에는 한 인물이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바로 말더듬을 극복하고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영국을 이끈 조지 6세 왕이었습니다.

1940년, 3살이 채 안 되었던 시들러는 부모님과 함께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피신했습니다. 이 여정 중 한 척의 배가 독일 잠수함에 의해 침몰되었고, 어린 시들의 마음 속엔 끝나지 않을 두려움이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부모님은 이렇게 말하며 그를 격려했습니다. “조지 왕도 어렸을 때 너보다 말을 더 더듬었단다. 하지만 지금은 보렴, 그가 얼마나 훌륭한 말을 하고 있는지.”

실제로 그는 16살이 될 무렵, 자신의 말더듬과 싸우기 위해 극단적 방법을 택했습니다. 그의 방에서 욕설을 내뱉으며 감정을 분출한 끝에 그는 처음으로 한순간 말더듬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이를 큰 전환점으로 삼았습니다. 이 경험은 그의 영화 속 장면에도 고스란히 담깁니다.

인내의 세월, 그리고 열정의 결실

시들러가 처음 조지 6세의 이야기를 영화로 옮기려 시도했던 것은 1980년대 초반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여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조지 6세의 아내인 엘리자베스 왕비가 “내 생전에는 이 이야기를 만들지 말아주세요. 너무나 고통스러운 기억입니다”라며 요청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녀가 세상을 떠난 2002년 이후에야 시들러는 이 프로젝트를 다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2010년에 나온 킹스 스피치는 전 세계 4억 2천 7백만 달러라는 엄청난 수익을 올렸고, 시들러는 할리우드의 열광적인 환호 속에 아카데미 수상자로 등극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상업적 성공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난 이제서야 이 이야기를 제대로 전할 준비가 됐다”고 말했던 그의 진심은, 영화를 보며 느껴진 진정성과 맞닿아 있습니다.

그의 유산: 영화 제작 이상의 가치

시들러는 단순한 작가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단순히 영화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진정한 자기 발견의 과정을 보여주었습니다. 첫 성공까지 수십 년이 걸렸고, 그는 이를 통해 할리우드의 젊음 중심 문화에도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전하는 메시지를 또 갖고 있었는데, 그것은 그의 생존 이야기였습니다. 시들러는 방광암 진단을 받은 후 치료 대신 시각화를 사용해 병을 극복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과정은 실제 할리우드 영화처럼 극적이었지만, 그는 이를 통해 창의력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 직접 보여주었습니다.

끝맺으며: 스토리텔링의 힘

데이비드 시들러는 단순히 좋은 이야기를 만드는 작가가 아니라, 인생이라는 거대한 스토리를 만든 창작자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쓸 가장 중요한 각본은 바로 여러분의 인생입니다.”

그는 그의 자녀들과 함께 남태평양 자연 속 캠핑으로 매년 떠나는 시간을 통해, 가족과 삶의 소중함을 계속해서 느꼈다고 회고했습니다. 그의 마지막 언행은 우리에게 “늦게 피는 꽃”도 자신만의 향기를 풍길 시간이 반드시 온다는 걸 일깨워줍니다.

그의 열정과 교훈은 영원히 우리 안에 살아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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